호주의 역사

세계1차대전 및 세계2차대전을 포함하여 20세기부터 원주민 역사, 영국인 이주자 및 호주 역사와 정치 등 호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호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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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세계1차대전 및 세계2차대전을 포함하여 20세기부터 원주민 역사, 영국인 이주자 및 호주 역사와 정치 등 호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호주의 초기 역사

호주 원주민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50,000년 전에 배를 타고 여기에 도착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유럽인의 정착 시기에 100만 명의 원주민이 수렵과 채집을 하며 대륙 전체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원주민은 500개의 다양한 씨족 또는 '민족'으로 흩어져, 각 집단마다 약 700개의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각 씨족은 땅에 대한 영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었고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일 뿐만 아니라 물과 계절별 생산물을 찾고 거래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이동하였습니다.  

아웃백 사막에서 열대 레인포레스트와 눈이 덮인 산까지, 본래 살던 곳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주민은 드리밍(Dreaming) 또는 ‘Tjukurrpa’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원주민 신화에 따르면, 조상의 정신이 삶의 모든 측면에 서려 있고 과거, 현재, 사람들 및 땅과 계속 유대를 맺고 있습니다. 드리밍 스토리(Dreaming Stories)는 정신적인 조상의 여행을 묘사하고 있으며 노래, 춤, 그림 및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주 북부에는 호주의 토착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카두 국립 공원을 둘러보십시오. 이곳에는 20,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000개 이상의 암벽화 유적지가 있습니다. 또한 케언즈(Cairns)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모스맨 협곡(Mossman Gorge)의 무성한 열대우림을 가로질러 쿠쿠 얄란지(Kuku Yalanji) 부족이 안내하는 드림타임 워크에 참여해 보십시오.

호주의 영국 식민지화

많은 유럽 탐험가가 호주 해안을 항해했으며 17세기 동안에는 호주가 뉴 홀랜드(New Holland)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것은 제임스 쿡 선장이 동부 해안을 전세 선박으로 둘러보고, 영국의 영토임을 주장한 1770년에 이르러서 입니다. 이 새로운 전초 기지는 1788년 1월 26일에 죄수 유형지로 이용되었고 11척의 퍼스트 플리트(First Fleet)가 승선 인원의 절반이 죄수인 1,500명을 싣고 시드니 하버(Sydney Harbour)에 도착했습니다. 1868년 죄수 수송이 끝나면서 160,000명 이상의 남녀가 죄수 신분으로 호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1790년대 초에 자유 정착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죄수들은 가혹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범죄를 저지른 남자 죄수는 잔인하게 태형을 당하였고 절도와 같은 사소한 범죄에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여성은 5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으며 지속적인 성 착취 위협 하에 살았습니다.  

호주의 식민지화는 땅의 강탈, 유입된 질병으로 인한 발병과 사망,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관습의 심각한 붕괴 등 원주민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무단 거주자들이 호주 내륙으로 이주

1820년대, 수많은 병사, 공무원, 해방된 재소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땅을 풍성한 작물이 자라나는 농장으로 일궈냈습니다. 호주의 값싼 땅과 풍부한 일거리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영국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정착민 또는 ‘무단 거주자’는 가축을 위한 목초지와 물을 찾기 위해 때로는 무장을 하고 원주민 영역에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825년 군인 및 범죄자 집단이 현재의 브리즈번에서 가까운 유게라(Yuggera) 부족 영역에 정착했습니다. 퍼스(Perth)는 1829년에 영국 신사들이 살기 시작했고 1835년에는 무단 거주자들이  포트 필립 베이(Port Phillip Bay)로 항해하며 현재의 멜번의 위치를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어떤 범죄자와도 연계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영국의 유한 회사는 남호주의 애들레이드 에 정착했습니다.

금광 열풍이 불러온 부, 이주자 그리고 반란

1851년 뉴 사우스 웨일즈 와 빅토리아 중앙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다른 주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러한 대열에 중국의 많은 시굴자가 가세하였고 엔터테이너, 술집주인, 불법 주류 판매자 및 돌팔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몰려들며 일대 혼란을 이루었습니다.

빅토리아에서 영국 총독은 골드필드 작업자에게 채광 면허를 부과하여 1854년 격렬한 반(反)권위주의 투쟁인 유레카 성채 사건(Eureka Stockade)이 발발했습니다. 광부들은 싸움에서 졌지만 더 많은 권리를 부여 받게 되었고 1854년에 법안이 통과되면서 광부 면허를 소유한 채굴자는 선거권과 국회 의원에 입후보할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를 호주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호주 국가 수립 

1901년 1월 1일, 단일 헌법 아래 호주의 여섯 주가 하나의 국가로 탄생합니다. 오늘날 200개국 이상의 사람들이 호주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호주의 가정에서 30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호주인의 참전

제1차 세계대전은 호주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14년 3백만 명 미만의 남자 중에서 약 420,000명이 자원하여 전쟁에 참가하였습니다. 대략 60,000명이 사망하였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호주 정보는 농지와 자금을 귀향 군인에게 제공하는 ‘군인 정착민 제도(Soldier Settler Scheme)’를 마련했습니다.

대전 종결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예고하였고 대영 제국에 대한 열정이 넘쳤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동차, 미국 재즈 및 영화가 빠르게 도입되었습니다 . 1929년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사회와 경제 분야가 확장되고 많은 호주의 금융 기관이 붕괴되었습니다. 스포츠는 국가적인 오락으로 여겨져, 경주마 챔피언 파 랍(Phar Lap)과 크리켓 선수 도널드 브래드먼(Donald Bradman)과 같은 스포츠 영웅은 거의 신화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호주 군대는 유럽, 아시아 및 태평양에서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고 살아남은 세대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후경제 호황으로 인한 새로운 호주인 유입

전쟁 동안 새로운 직장이 여성들에게 개방되고 고용된 여성의 수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에 종결되었을 때 유럽과 중동의 수만 명의 이주자가 호주에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던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스노위 마운틴(Snowy Mountains) 수력전기 계획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주요 국가 재건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호주 경제는 1950년대에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금속, 양모, 고기 및 고래 수출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가 증가하였고 호주의 교외지역이 번화해졌습니다. 주거 소유 비율이 1947년 거의 40퍼센트에서 1960년대에 70퍼센트 이상까지 극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호주의 정책 완화

호주인들은 1960년대의 혁명적인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호주의 인종적 다양성,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요구 증가 및 베트남 전쟁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은 정치, 경제 및 사회변화 분위기에 일조를 하였습니다.  

1967년 호주인들은 연방정부가 호주 원주민을 대신하여 법을 만들고 향후 인구조사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 투표에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 및 백인 호주인에 의한 강력한 개혁 캠페인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1972년 고프 휘틀럼(Gough Whitlam)의 이상적인 리더십 하에 호주 노동당은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었고 자유농민당 연립정부의 전후 통치 체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향후 3년 간 새로운 정부는 징병제를 끝내고 대학 등록금을 폐지했으며, 일반적인 무료 의료 서비스를 도입했고, 백호주의 정책 대신 다문화를 수용하고, 당사자 쌍방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이혼과 여성에게 동등한 임금 지급 등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1975년에 인플레이션과 스캔들로 인해 총독이 정부를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차기 총선에서 노동당은 큰 패배를 맛보았고 자유국민연합이 1983년까지 통치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호주 정책

1983년과 1996년 사이에 호크 키팅(Hawke–Keating) 노동당 정부는 은행제도 규제완화 및 호주 달러에 변동환율 적용과 같은 많은 경제 개혁 방안을 도입했습니다.  

1996년 존 하워드(John Howard)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총선에서 승리하였고 1998년, 2001년 및 2004년에 재집권에 성공하였습니다. 자유국민 연립정부는 조세제도 변경과 노사관계 시스템을 포함하여 몇 가지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2007년 케빈 러드(Kevin Rudd)가 이끄는 노동당은 호주의 노사관계 시스템을 개혁하고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고 교육분야의 공립학교 교육과정을 이행하는 등의 과제를 제시하여 선출되었습니다. 3년 후에 러드(Rudd)는 호주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된 줄리아 길러드(Julia Gillard)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2013년 새 연립정부의 수반인 토니 애봇(Tony Abbott)은 취임 선서를 하였습니다. 2015년 9월 애봇(Abbott)은 대표자 무기명 투표에서 2016년 7월에 총선에서 다시 선출된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에게 패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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