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2차세계대전 역사를 찾아 보세요

다윈의 2차세계대전 역사를 찾아 보세요.

다윈의 역사유적지들을 통해 다윈에 2차세계대전이 닥친 날에 대해 알아보세요.
1942년 2월 19일 목요일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기 전에는 다윈의 전형적으로 무더운 아침이었습니다. 
기온이 그늘에서도 33도로 치솟고 습도는 90퍼센트에 달해, 인구 2천명(여성 인구 63명에 불과)의 다윈은 이미 푹푹 찌고 있었습니다.

오전 9시58분 일본군 폭격기들이 다윈항 상공으로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자, 더위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이내에 300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243명 사망에 3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188대의 일본군 폭격기 가운데 대다수가 몇 개월 전 진주만을 공격했던 그 항공기들이었습니다. 

다윈은 제법 규모가 큰 군사기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최초의 적 공습을 감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물과 전기가 끊기고 외부와의 연락도 두절된 상태에서 아무런 상부의 지시 없이 다윈의 주민들은 갈팡질팡하며 적의 공습에 대한 소문이 횡횡한 가운데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훈련을 포기한 채 시민들의 피난대열에 합류, 도시를 등졌습니다.  피난민 행렬은 무작정 달리며, 자전거나 말 또는 차를 타고는 다윈에서 남쪽으로 115km 떨어진 조그만 시골마을인 애들레이드 강(Adelaide River)에 이르기까지 숨도 돌리지 못 했습니다.  훗날 일명 ‘애들레이드 강의 위기(Adelaide River stakes)’라고 부르는 이 대탈주는 바즈 루어만(Baz Lurhman)의 대서사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호주정부는 다윈 공습과 그에 따른 혼란, 공포, 패주에 대한 대부분 사실들을 은폐하였습니다.  일본이 싱가폴을 점령하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들의 사기저하를 우려한 호주정부는 다윈에서 17명 사망, 24명 부상이라는 허위 통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18개월간, 다윈에서는 총64회의 공습으로 1천명 이상의 인명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뉴스가 차단된 상태에서 대부분의 호주인들에게는 호주 역사상 가장 오래 끈 이 공격의 심각성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다윈시 안팎의 곳곳에 산재한 2차세계대전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항공문화센터(Aviation Heritage Centre)에서 실제 전쟁에 활약하던 B52 폭격기들을 살펴보고, 시내 안팎에서는 옛 활주로 여러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찰스다윈 국립공원(Charles Darwin National Park)에 있는 호주 북부 방어선의 일부였던 탄약고들을 방문해 보거나, 다윈에서 남쪽으로 47km 떨어진 베리스프링스 자연공원(Berry Springs Nature Park)에서 10만 명의 병력을 수용했던 숙영지도 구경하세요. 

도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이스트포인트 군사박물관(East Point Military Museum)에서는 톱 앤드(Top End) 방어전략을 수립했던 벙커에도 걸어 들어가 보며, 호주에 2차세계대전의 포화가 남긴 생생한 자취들도 확인해 보세요.  도시 밑으로 나 있는 전시 유류저장 터널을 걸어서 통과해 보거나, 신성한 원주민 지역이기도 한 카수아리나 해안보호구역(Casuarina Coastal Reserve)의 포병 관측소들을 둘러 보세요. 

톱 앤드의 전쟁역사 투어에 참가하거나, 직접 차를 몰고 다윈으로부터 스튜어트 하이웨이(Stuart Highway)를 타고 내려가 보세요.  하이웨이를 따라 있는 군용 활주로들을 구경하고, 애들레이드 강의 박물관 및 전몰장병 묘지에 들러 보세요.  캐더린(Katherine)에서 전시 생활상에 대해 좀더 배우고 난 후, 라리마(Larrimah)나 델리 워터스(Daly Waters)와 같은 유서 깊고 다양한 색깔을 띤 마을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나누며 현지인들의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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